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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ning Gallery

Morning Gallery '아돌프 히틀러'

by 핑쿠여니 2023.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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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ning Gallery / 십만시간의행복

Adolf Hitler 1989-1945
2차대전전범, 홀로코스트 기획자.

청년기의 아돌프 히틀러는 화가지망생으로서 그림 엽서나 홍보 그림을 그려서 팔던 알바생이었다. 배고프고 가난한 화가 생활에 염증을 느끼던 중 그는 20대 중후반에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다.

"빈에 거주하던 시절 매우 가난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부업삼아 그리던 그림엽서가 나름 잘 팔려서 경제적으로 곤란을 겪진 않았다.", "뮌헨에서는 광고판 등을 그렸으며 평 또한 나쁘지 않았다."는 기록들이 있다.

미대에 낙방했단 것 때문에 히틀러의 미술 실력이 별 볼 일 없는 수준이었다는 말이 많지만, 독일의 역사학자인 라이너 자이틀만 등에 따르면 사실 히틀러의 그림 실력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 중에서도 평균 이상이었다고 한다. 다만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계속해서 수구적인 화풍을 고집한 것일 뿐이지, 그림 자체는 분명 꽤나 잘 그리는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력이 별로였다는 말이 자주 나오는 것은 히틀러의 악행들로 인한 증오심에서 나온 것으로 추측된다는 의견도 있다.

앞에서 서술했듯이 아돌프 히틀러는 어린 시절부터 미술에 관심이 있었고 파리로 유학을 떠날 정도였다. 다만 아돌프 히틀러는 건축물을 묘사한 풍경화를 주로 그렸고, 사람을 잘 그리지 못해 인물화는 거의 손대지 않았다. 풍경화에서도 배경의 사람들은 간략하게만 묘사하였다. 후기작에서는 간간히 사람을 그렸지만 여전히 중심은 건물이었다.

다만 아돌프 히틀러가 남긴 그림을 보면 평범한 구도에 특별히 미적인 독창성이 없으며, 어긋난 원근법이 곳곳에서 발견되며, 색감 또한 단조로운 편이다. 때문에 일부 평론가들은 기술은 괜찮았지만 예술적 성향보다는 건축조감도 느낌이 난다고 평가했다. 이를 아돌프 히틀러의 과격하고 잔혹한 정치적 행보와 엮어서 '아돌프 히틀러는 인간을 무의미한 존재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림에서도 지워버렸다'는 식으로 추론하는 의견이 종종 보이지만, 제대로 된 근거는 없기 때문에 단순히 아돌프 히틀러 개인의 풍경화 취향이 그랬을 뿐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아돌프 히틀러의 미술적 취향은 자신의 그림처럼 다소 고전적이었으나 훗날 알려진 것처럼 처음부터 모더니즘 예술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던 것은 아니다. 아돌프 히틀러의 롤모델이었던 무솔리니와 이탈리아의 파시즘이 초기 모더니즘 예술의 후원자였으며 나치당 역시 초기에는 모더니즘 건축 등에 관심을 보였었다. 나치가 정권을 잡은 후 게르만의 문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정의하던 나치당의 인사들에 의해 고전 예술이 게르만적이라고 정의되고 모더니즘이 타락한 예술이라고 정의된 이후부터 거기에 편승했다. 마침 독일의 기성 미술계도 이런 비슷한 보수적인 시각이 있었기에, 차츰 입체파 스타일 등을 시도만 해도 화풍이 '유대적으로 물들었다'고 판명하고 제국 예술협회에서 쫓아내고 활동을 금지했으며, 현대미술 작품에는 퇴폐적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1937년에는 <위대한 독일미술전>과 <퇴폐미술전>이라는 전시회를 여는데, 퇴페미술전에 에밀 놀데, 마네 등 오늘날 근대 미술의 선구자로 추앙받는 이들의 작품을 전시하면서 기형아, 장애인의 사진과 비교를 하면서까지 '옳지 못한 예술, 옳지 못한 신체'의 이미지를 대중에게 주입하려고 애썼다. 반대로 <위대한 독일미술전>은 아카데믹한 회화나 조각이 주를 이룬 전시회였고, 아리아 인종의 신체를 찬양하는 교과서적인 누드 작품이 많았다. 그러나 우습게도 정작 내세웠던 위대한 독일미술의 기원은 그리스-로마 조각상, 르네상스 이탈리아 회화다. 또한 <퇴폐미술전>은 나치의 기대와는 달리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고 한다. 아돌프 히틀러의 건축적인 취향은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를 통해 나치 제국의 수도 계획인 게르마니아로 구체화된 바 있다.

아돌프 히틀러의 배타적인 예술관에 대한 일화가 있다. 괴벨스는 300만 제국 마르크를 들여 초호화 제국선전장관 관저를 지어놓고 집들이 겸 파티를 열었다고 한다. 아돌프 히틀러도 초대되어 집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경악하며 인사도 없이 돌아가버린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이유는 괴벨스가 선전부 예산과 영화계 뇌물로 흥청망청 초호화 저택을 지어서도 아니었고, 국립미술관의 그림들을 선전장관 개인 저택에 제 멋대로 걸어놔서도 아니었다. 바로 입구에 걸어 둔 수채화 그림이 천박해서였다. 그리고 아돌프 히틀러는 몰래 베를린에서 개최하는 미술작품 전시회에 '몰래' 분장을 하고 갔었다. 아돌프 히틀러의 비서인 트라우들 융에의 회고록에 따르면, 아돌프 히틀러는 롱코트를 입고 모자를 푹 눌러쓴 차림으로 미술 전시회에 갔는데, 그 이유는 이전에 전시회에 그냥 갔다가 주위의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계속 "총통각하 만세!"를 외치는 바람에 작품 감상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돌프 히틀러는 젊은 시절 2천여 점의 그림을 그렸으며 그 중 700여 점 정도가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복무 하던 시절에 그린 그림이 벨기에의 농가에서 발견되는 등 간간이 신작이 발견되기도 하기 때문에 수가 약간씩 늘고 있으며, 경매에도 꽤나 자주 나오는 편. 총통 시절에도 나치당원들이 아부한답시고 비싸게 샀지만 현대에도 그 희소성으로 인해 상당히 비싸게 거래된다. 아돌프 히틀러의 그림 중에서 꽤나 유명한 축에 속하는 <바다의 야상곡>이라는 그림은 2012년 슬로바키아의 온라인 경매에서 3만 2천 유로(약 5천만 원)의 가격에 팔렸고, 뮌헨 시청을 그린 그림 한 점은 13만 유로(약 1억 8000만 원)에 팔렸을 정도. 인터넷에서도 상당수의 작품을 볼 수 있으며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클릭하는 걸 보면, '세계의 모든 사람이 내 작품을 보도록 하고 싶다'던 아돌프 히틀러의 소망은 결국 실현된 셈이다.

다만 예술적 가치가 있어서 팔린다기보다는,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가 직접 그린 작품이라는 희소성 때문에 경매에 나오는 쪽에 가깝다.[35] 인터넷에서 아돌프 히틀러의 작품을 검색해 보는 사람들 또한 작품이 좋아서가 아니라 '아돌프 히틀러란 악당이 그림도 그렸다는데, 과연 어떤 그림일까' 같은 호기심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위에 나와 있는 <바다의 야상곡> 같은 경우도 그림만 보고서는 아돌프 히틀러의 작품이라는 것을 전혀 상상하지 못하는 그림으로 유명하다.

게다가 다른 제대로 된 작품들과는 달리 경매 자체에도 논란이 있다. 나치 피해자 중에는 아돌프 히틀러가 그린 그림도 나치의 산물이라 주장하며 소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이걸 낙찰받는다는 것 자체가 홀로코스트 관련 단체들의 어그로를 끄는 일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큰 경매장에서는 올라오지도 않고, 대부분의 낙찰자 역시 익명으로 낙찰받는다. 그나마 밝혀진 경우는 자료 삼아 공개적으로 구입하는 교육재단 등의 시설 뿐. 2017년 새로 발견된 아돌프 히틀러 그림 역시 신원 미상의 기증자가 관련 재단에 기증하면서 존재가 알려졌다./나무위키

@https://naver.me/xuMd40o5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2032411120001610


https://www.instiz.net/pt/2059847?frompc=1


https://m.blog.naver.com/allthat_art/221144798134

화가를 꿈꾼 나치의 독재자 히틀러...남몰래 '디즈니' 캐릭터 그렸다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는 어린 시절 화가를 꿈꿨...

blo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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